4.ILO 조약권고적용전문가위원회의 소견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운동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인신매매 등의 현재의 문제와 연결시키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던 ILO 조약권고적용전문 가위원회는 주목할 만한 ‘소견’을 내놓은 적이 있다. 1996년에는 ‘위안부는 성노예’이고 ‘강제노동금지조약 위반’이라고 했던 그들이 2001년의 소견 에서는 이렇게 쓰고 있다.

법적으로 보상 문제는 조약(한일기본조약-인용자)에 의해 끝났다고 인정한 다. 각국 노동조합의 반대의견도 소개하며, 맥두걸 보고서의 견해에도 주의. ‘일 본 정부는 청구자 및 청구자를 대표하는 단체와 협의하여 더 늦기 전에 희생자의 기대에 보답할 수 있는 방법으로 희생자에게 보상하는 다른 방책을 찾아내기를 바란다.’(액티브뮤지엄 ‘여자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 283쪽에서 재인용)

그들은 이렇게, 1965년의 ‘조약’에 의해 ‘법적인 책임은 없다’는 일본 정 부의 변을 명확히 인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다른 방책을 찾아내’라고 권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벌써 12년 전의 일이다. 또 2003년에는 “개인청 구의 법적 근거에 대해” 일본 정부의 자료와 그 밖의 여러 자료를 “상세히 인용”하면서, 그에 대해 “본 위원회로서는 의문 상태로 놔두고자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견해가 개인 전문가에게 지지되지 않고 있다”고 쓰면서도 “일본 정부의 의견은 옳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피해자들이 주장하는 “청구권에 대해서는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고 덧붙이고 있다. 더 이상 이들의 주장에 대답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보고서는 이어서 “2국간조약, 다국간조약의 법적 효과는 ILO의 권한 밖이며, 성노예에 관한 최종적인 의견을 말하는 일은 불가능하고, 또 하지 않겠다”고 명언하고 있다. 이듬해 2004년에는, “앞서의 결론을 반복하 며, 총회에서 위원회의 의제로 채택하지 않았다”고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내놓지 않을 자세를 표명하고 있다.

말하자면 유엔이나 국제노동기구는 이렇게 이미 10년 전에 일본의 해명 을받아들인상태였다.그리고더이상위안부문제에대해논의하지않겠다 는쪽으로입장을정리했던것이다.다시말해유엔위원회들은처음에는일 본에 대해 한국 측의 주장을 근거로 이런저런 권고를 했지만, 2000년대 이 후에는이문제에관해일본의‘법적책임’이필요하다고말하지는않았다.

그러나 정대협을 비롯한 지원자들은 그런 세계의 시각의 변화를 공식적 으로 말한 적이 없다. 한국인들이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들이 여전히 한국 의입장을 지지하는 것처럼 생각하게된것도그결과다.

2012년 10월 31일에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의 일본에 대한 정례 인권검토회의에서 일본에 대한 7개국의 성토가 이어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유엔 인권이사회가 일본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하는 보고서 를 채택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책임 회피로 일관하고 있는 일본 정부의 비인 권적 태도에 대해 국제 사회가 경고를 보낸 것이다. (중략) 이번 정례인권검토회의에서 한국과 북한, 중국, 네덜란드, 코스타리카, 동티모르, 벨라루시 등 7개국 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에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한 바 있다. 위안 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을 비판한 나라는 2008년 4개국에서 7개국으로 늘어났으 며 특히 중국이 2008년 당시와 달리 일본을 직접 거명해 비판한 바 있다.(『경향신 문』, 2012. 11. 4.)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것은 ‘유엔 총회 인권이사회’가 실시하는 ‘국가별 정례 인권검토(UPR, Universal Periodic Review)’이다. 인권이사회에서 신 설되어 2008년에 최초로 시행된 제도로, 193개 회원국이 4년에 걸쳐 순차 적으로 자국의 인권 상황에 대해 회원국들로부터 심의를 받는다.

그런데 일본에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한 나라는 불과 7개국이 다. ‘보고서를 채택’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7개국의 의견을 존중했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 가운데 네덜란드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네덜란드인 위안부가 말그 대로 ‘강제연행’당해 위안부 역할을 해야 했던 그들 자신의 문제와 무관하 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동티모르의 경우도 그들에게도 태평양전쟁 때 일 본군이 민간인을 범해 혼혈아가 태어난 경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부산 정 대협의 전시관 자료 참조). 중국과 북한 이외의 다른 두 나라가 어떤 이유에서 일본을 규탄했는지 알 수 없지만, 유엔 회원국 190개국이 넘는 나라 중 한 국과 같은 요구를 한 나라는 불과 7개국이다. 중국이 “2008년에도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면서도 일본을 비판하는 직접적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직접 일본을 거명했다”(『연합뉴스』, 2012. 11. 1.)는 것은 (과거엔 중 일조약으로 보상 문제는 해결되었다고 하면서 ‘위안부’를 문제삼지 않았던) 중국이 최근의 영토 문제 등의 영향으로 입장을 바꾼 것일 확률이 높다. 말하자면 여성들의 인권 자체를 생각한 반응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의도가 담긴 입장 전환으로 보인다(중국의 경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중일 국교정상화 당시에 끝난 일로 하고 새로운 보상을 요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