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일본의 범죄성’을 주장하는 데에 중요한 지표로 삼아온 ‘세계의 생 각’은 실상은 우리가 생각해온 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뿐만 아니라 동조 하는 나라들도그배경은 각각 다르다.
무엇보다도, 영향력이 컸던 90년대의 보고서들이 아직 한국과 일본조차 조선인 위안부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는 시기에 만들어졌다는 사실, 그리 고그내용이 차츰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동안 한국의 지원자들은 일본 정부나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이들과 의 접점을 찾기보다는 일본의 외부, 즉 한국이나 세계와의 연대에 더 많은 노력을 할애했다. 일본의 지원자들 역시, ‘일본 사회의 개혁’을 원하면서도, 일본 내부의 반대자들이나 정부와 대화하기보다는 외부와의 연대를 통한 압박 정책을 택해왔다.
한국의 지원단체가 세계를 상대로 운동을 시작했을 때 “‘위안부’ 문제 하 나만으로는 무리”이니 ‘인신매매와 연결시켜라’라는 유엔 관계자 등의 충 고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처음엔 유엔의 ‘고문금지위원회’도 ‘현재’의 문제 에만 집중했고 ‘과거’ 문제인 ‘위안부’ 문제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운동가들은 2004년 ‘STOP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캠페인을 시작했고 그 결과 ‘분쟁하의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개념 안에 ‘위안부’ 문제를 포함시킬 수 있었다. 이후 2007년 11월 국제사면위원회 주도의 ‘위안 부 문제 해결을 위한 스피킹 투어’가 실시되었고, 피해자들이 네덜란드, 유 럽연합, 독일, 영국, 캐나다 등을 방문해서 증언하는 행사가 이어졌다(하바 구미코). 11월에서 12월에 걸쳐 네덜란드, 캐나다, 유럽연합의 각 의회에서 ‘위안부’ 결의가 채택된 것은 그렇게 운동의 방향을 ‘여성의 인권’ 문제로 방향 전환하고 ‘인신매매’와결부시킨 결과로 보인다.
「2006년 6월의 유엔 인권이사회 보편적 정기조사」의 권고는, 조사 시점 에서 “위안부 문제는 미해결의 문제이나 일본 정부는 그 사실조차 인정하 고 있지 않다는 인상을 많은 국가가 가지고” 있었고, 이미 “‘세계의 기억’이 되어 있다고 ‘자유권규약위원회’ 위원이 발언”했다. 이에 따라 비로소 ‘위 안부’ 문제는 “분쟁 속의 여성에 대한 폭력의 상징으로 인식되”(가와다 후미 코)기 시작한 것이었다. 전 세계의 페미니스트, 인권운동가, 인권단체의 연 대활동은 그렇게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세계의시각’을만들었다.
하지만 ‘인신매매’와 연결시킨 이 운동은 ‘위안부’ 문제에서 결코 도외시 할 수 없는 ‘업자’ 문제를 은폐한 것이었다. 현재 서양의 국가들은 “위안부 제도는 20세기 인신매매에 있어 가장 규모가 큰 예 가운데 하나”라며 “황 군의 행위에 대해 애매하지 않게, 명확하게, 공식적으로 인정”(「유럽의회 결 의」, 인용은 가지무라 다이이치로, 2008. 6.에서)하라고 요청하고 있다. 여러 보 고서들이 일본 정부에 사죄를 요청하지는 않게 되었지만 여전히 인신매매 자체에 일본군이 관여했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설령 군 등이 업자를 ‘선정’(요시미 요시아키, 2009. 1)했다 하더라도, 모든 사례가 그렇지 는 않았다. 게다가 동원이 ‘인신매매’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군이 알고 도 지시한 것이 아닌 한, 설사 방관했다 하더라도 그 묵인이 의식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한, ‘강제연행’이나 ‘인신매매’의 주체를 ‘일본군’으로 상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2007년의 각국 의회의 결의는 전쟁으로 인한 여성의 피해를 세계에 호소 하고 공감대를 넓혔다는 점에서는 중요한 성과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때의 구미 각국의 결의는, 운동이 조선인 위안부의 특수성을 제거하고여 성인권 문제로 호소하면서 구미의 ‘식민지배’의 그림자를 지워버렸기 때문 에 가능했던 성과였다. 말하자면 구미 각국은 자신들도 식민지배의 경험이 있고 위안부를 필요로 한 군대를 가졌다는 점에서는 일본만을 비판할 수는 없는 일이었는데 위안부 문제를 자신들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 문에 안심하고 ‘일본’만을 비판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일본의 식민지배로 인해 위안부 문제를 안게 된 나라가 다른 서양 제국에 대해 일본 제국에 대 한비판을 호소한 셈이니 아이러니가 아닐수없다.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은, 위안부 문제를 단순히 ‘전쟁’의 문제로 호소한 결 과다. ‘전쟁’의 문제로 호소하는 한 일본과 싸워 이긴 연합국, 즉또 다른 서 양 제국이 일본에 대해 엄격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전쟁에서의 자신들의 피해—타이-버마를 잇는 구역에서 연합군 포로가 혹사당해 많은 병사들이 죽음에 내몰렸던 일 등—를 떠올릴 테니까. 그런 한네덜란드 등의 입장에 동정하고 공감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동시에 일본 과의 전쟁에서 그들은 그들의 식민지를 잃었다.
그러나 정대협의 관계자는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국민기금을 만든 일본 정부는 잘못된 정부”이고 “최근 미국 하원의 결의안 채택을 둘러 싸고 네덜란드・대만 등과의 연대가 강화되어” “서구 사회에 일본군 ‘위안 부문제’를여론화하는데있어큰역할”을 수행했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여전히 일본 정부는 법적 책임을 다하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으로 다해야할책임은 다했다고 말하고 있습니 다. 과거의 범죄에 대한 반성도 없이, 오히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지워버리거 나 침략전쟁을 왜곡, 미화하고 있고 재일조선인에 대한 테러와 탄압, 북한에 대 한 적대시 정책을 고수하면서 일본의 전쟁범죄를 반성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에 더해 교육법을 개악해 군국주의 교육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려 하고 있고 평화헌 법9조 개악을 통해 군사대국에의 야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윤미향, 52쪽)
그러나 그동안의 과정을 보면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지워버리”려고 했 다는 것은 근거 없는 주장일 수밖에 없다. 또, 지원단체가 생각하는 해결책 이 아니었다는 점만으로 전쟁에 대한 일본의 사죄(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 오부치 선언, 수상의 편지)를무시하고 “침략전쟁을 미화”했다고 주장하는것 역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이 문제를 ‘재일조선인에 대한 테러와 탄압’, ‘교 육법’ 등에 대한 비판과 결부시키는 것도 비약일 뿐이다. 교육법 개악은 애 국심을 키워 국가를 위해 언제든 생명을 던질 수 있는 ‘국민’을 키우려 하 는 교육을 지향하는 것이니 비판될 수 있지만, 여기에는 똑같은 교육을 하 는 한국이나 그야말로 ‘군국주의’ 국가인 북한에 대한 반성적인 인식은 없 다. 일본에서는 독일의 배상이 높이 평가되지만, 그것은 법적 책임이 아니라 ‘도의적 책임’을 지는 배상이었다.
일본의 반발을 부른 것은 사실이라고 하기엔 어려운 이런 식의 이야기들 이기도 하다. 2000년의 여성국제전범법정은 한일의 지원자들이 세계를 향 해 운동한 성과였지만, 이런 시각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진 성과였고, 특히 쇼와 천황을 ‘범죄자’로 규정한 것은 사태를 악화시켰을 뿐이다. 위안부 문 제를 지원하는 이들의 운동이 단순히 인권의식을 위한 운동을 벗어나 일본의 체제를 위협하는 ‘좌파’들의 운동이라는 의식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천황제’나 제국의 구조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는 않아도 ‘위안부’ 문 제에 대해서는 ‘사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까지 반발하도록 만 든 것이다. 전범법정 이후 12년, 2007년의 미국을 비롯한 각국 의회의 결의 이후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운동가들이 ‘입법’을 못하고 있는 것도 그것을 증명한다.
위안부를 지원해온 이들은 이제까지의 운동 방식에 대한 비판에 대해 “‘위안부’ 문제가 전혀 해결되어 있지 못한 현 상황에서는 평가와 총괄•비 판은 더욱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스즈키 유코, 2008 12. 27.)고 말한 다. “설령 비판하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운동의 전진에 기여할 수 있는 보 충적 비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운동의 전진’ 자체가 아니다. 필요한 것은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고, 그것을 통한 ‘위안부’들의‘운동으로부터의 해방’이다.
다른 나라들은 합의를 이룬 위안부 문제가 한국만 합의에 이르지 못한것 은냉전 종식과 함께 제국에 저항했던 진보좌파들이 다시 한번 제국에 대해 저항하는 형식으로 운동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입장이 ‘일본’을 한국 이 상으로 비판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이 ‘제국’을 비판하면서도 또 하나의 제국인 네덜란드와 연 대하는 식의 운동은 모순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문제는 그런 운동이 일본 을 움직이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이제 그 런운동의 모순이 한꺼번에 드러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