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말할 수 없는 구조’는 한 가지 의견과 인식만이 받아들여지는 지 극히 경직된 사회구조가 만든 것입니다. 중요한 건 그 구조 속에 위안부 할머 니들까지도 갇혀 있다는 점입니다. ‘다른’ 생각을 하면서도 말하지 않거나 말하지 못하는 구조는 오늘까지 그렇게 우리 사회 전체에 강력하게 살아 있습니다. 2011년 여름의 헌법재판소 판결에 대해 비판적인 법학자조차도 비판을 공 개적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물론 두려움이지만, 그건 그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나 의목소리 외에는 용인하지 않는 우리 자신이 만든 일입니다.
2014년 4월, 세월호의 비극을 통해 우리는 지금 한국 사회의 가치관이 하나 로 집약되었던 결과로 빚어진, 너무나도 취약한 사회구조를 보았습니다. 그리 고 이 문제를 두고도 한국 사회는 분열과 혼돈의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위 안부 문제를 둘러싼 상황이 세월호의 비극을 둘러싼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그때문이기도 합니다.
하나의 생각만이 존중되는 사회, 국가에 그 목소리를 대표시키는 사회는 ‘다른’ 목소리를 가차없이 억압하고 배제하며 스스로를 국가화합니다. 그러나 다양한 삶의 모습이 인정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듯 한국 사회가 더욱 건강 하고 지혜로워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목소리가 시급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말 하지 않는 한 현재의 인식과 구조는 유지될 것입니다. 그리고 위안부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여기 모인 분들, 그리고 이 모임에서의 이야기를 듣고 보게 될 모든 분 들이 오늘의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따라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상황은 바뀔 수도 있고 바뀌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위안부 문제의 전환점을 만드는 것은 사실은 이 모임을 준비한 저희들이 아니라 여기 와주신 여러분들입니다.
때마침 한일 간의 정부 부처 국장급 협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과거 에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두 번 놓쳤습니다. 1990년대와 2012년 봄입 니다. 이번이 세번째 기회이자 마지막 기회입니다. 더 이상 위안부 할머니들을
국가나 단체의 자존심을 위한 인질로 삼지 않아야 합니다. 과거에 전쟁 수행을위해 국가에 동원되었던 분들을 또다시 국가의, 혹은 남성들의 ‘체면’이 이용 하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세월호 사건에서 한국의 대통령은 일본의 구조 지원 제안을 거부했습니다. 그렇게 만든 것은 취임 이후 줄곧 일본과의 대화를 거부 해왔던 대통령의 체면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은 대통령을 그렇게 만 든 것은 일본 관련 학자, 지원단체, 언론, 그리고 그들의 불신을 공유한 우리 자 신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어린 학생들을 죽이도록 만든 구조에서 우 리는 아무도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도 우리는 뒤늦게마나 말해야 하고 들어야 합니다. 우선은 각 세력에 의해 오랫동안 인질이 되었던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서. 연로하신 할머니들이 이제는 반목과 불화가 아니라 용서 와화해의 주체로 거듭날수있도록 돕기 위해서.
오늘의 모임을 만든 것은 그런 바람이라는 것을, 이미 하늘나라로 떠난 위안 부 할머니들과 너무나 어렸던 꽃 같은 생명들에게, 들려주고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