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위안부 문제 관계자들이 현대 일본을 ‘군사주의 국가’나 ‘침략적 국 가’로 간주해온 것은 위안부 문제를 일본만의 특수한 문제로 생각하고 그 원인을 천황제와 사무라이의 전통에서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의 저변에는 무엇보다 먼저 매매춘을 허용하고 관리 했던 공창제가 있었다. 근대 이후 해외로 팔려나간 가난한 소녀들이 처음 정착한 곳은 대개 항구도시였고, 그녀들의 이동에 맞추어 공창이 합법화되 었다. 그것은 ‘국가의 세력확장 욕망’에 따라나선 남성들을 그곳에 가능한 한오래 묶어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공창은 제국주의적이 동과 정착을 뒷받침한 장소였다.
공창을 한국에 이식시킨 것은 일본이었지만, 일본에 앞서 아시아에 자국 을 위한 공창을 만든 것은 서양이었다. 그 과정은 서양이 먼저 아시아에 먼저 식민지를 만들고 이어서 일본이 서양에 저항하며 자신들의 식민지를 만들기 시작한 과정과 정확히 일치한다.
일본은 대만과 조선, 그리고 중국의 일부에 식민지를 만들었지만, 같은 시기, 영국은 홍콩 등에, 프랑스는 동인도 등에, 네덜란드는 이보다 훨씬 전 에 인도네시아 등에 식민지를 만들었다. 그런 “아시아의 영국령 식민지에 는 일본의 개국 이전부터 공창 풍습이 제도적으로 존재했다”(야노 도루). 홍 콩의 경우 “1845년 6월부터 이미 윤락시설이 공인되었고, 1857년 조례 제 12호로 성병검사 조례가 공포되었으며, 1867년에는 새로운 조례로 창부의 등록과 신체검사 실시가 공인되었”(같은책, 40쪽)던것이다.
‘가라유키상’에 관한 또 다른 유명한 책인 야마자키 도모코의 『산다칸 8번 창기집』에는 보르네오까지 팔려간 나가사키 소녀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또한 “구미 열강에 의한 식민지 수탈을 위해 형성된 거점도시가 창부 의 수요를 만들었”고 “유럽에서 백인 창부가 아시아로 향하는 한편, 아시 아 여러 민족의 여성들도 창부로서 해외 각지로 보내”(105~106쪽)지는 과 정에서 생긴 일이다. 가난한 여성들의 해외이동을 조장한 것은 가부장제와 국가주의뿐 아니라 무엇보다 먼저 자국의 세력을 해외로 넓히려 했던 제국 주의였다.
한 국가의 ‘군사주의’는 분명 ‘위안부 문제’의 결정적 원인이지만, ‘위안 부’는 군인뿐 아니라 상업 등의 목적이나 일자리를 떠나 해외로 떠나간 이 들을 위해서도 존재했다. 일본의 탄광 등에 와서 노동을 해야 했던 조선인 노동자를 위한 이른바 ‘기업 위안부’도 기본적으로는 일본의 제국주의의 팽창이 만든 존재였다. 그들은 조선반도의 ‘가라유키’이기도 했지만, 그들 의 노동력이 ‘일본 제국’의 것인 한 그들은 ‘일본 제국’의 ‘가라유키’들이 었다. 그렇게 ‘제국 만들기’에 동참한 국가들은 모두 자국의 남성들을 위해 ‘위안부’를필요로 했다.
사회의 하층계급 여성들의 이동이 활발했던 것은 다른 경제 시스템 안으 로 편입되는 ‘이동’이 그들의 몸값을 높여주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위안 부 문제’는 국가의 문제일 뿐 아니라 더 본질적으로 자본의 문제다. 제국 국 가가 ‘교역’을 빌미로 타국에 불평등조약을 강요하고 상품을 팔아 경제적 이득을 취했던 것처럼, 업자와 포주들은 여성을 ‘상품’화해서 소비자에게 팔았다. 그런 의미에서도 ‘위안부 시스템’에서 실제로 가장 많은 이득을 취 한 것으로 보이는 ‘업자’의 존재를 보지 않고는 ‘위안부 문제’의 본질이 보 이지 않는다.
‘제국’은 그렇게 조국을 떠난 상인들이 자신과 자국의 이득을 꾀하면서 생길 수 있는 충돌—작게는 일상적 트러블에서 크게는 전쟁—을 이겨내 고 그곳에더 오래 머무를수 있도록, 다시 말해 그들이 국가의 세력을 확장 하고 경제를 윤택하게 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길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관리 한다. 위안소는 표면적으로는 군대의 전쟁 수행만을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본질은 그런 ‘제국주의’와 인간을 착취하여 이윤을 남기려고 하는 자본 주의에 있다. 전쟁 자체는 그런 경제전쟁에서의 방해물을 제압하고 성공시 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일본의 근대 계몽주의자였던 후쿠자와 유키치 가“창부의해외돈벌이는‘일본이세상을다스리는데에필요하다’”(야노도 루, 45쪽)고말한 것은 바로 그런 의미였다.
근대 국가는 ‘부국’이 되기 위해 자원을 획득하거나 상품을 팔기 위해 자 국의 영향력이 미치는 영토를 확장하려 했다. 현대 국가는 노골적으로 영토 확장을 꾀하지는 않지만, 자국의 이익을 위해 ‘힘’이 미치는 영역을 넓히려 하는 운동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운동’에 ‘군인’이나 ‘산업 전사’들이 동원된다. 홀로 떠나가는 그들을 위해 자국의 혹은 상대국의 ‘이익’에 맞춰 여성들이 동원되기도 한다. 자국을 떠나 오랜 기간 일종의 격리 상태라는 왜곡된 구조에 방치되게 되는 그들을 위해 국가가 ‘위안부’를 준 비하는 것이다.
물론 때로 군대가 공식적으로 금해도 업자들이 마구잡이로 들어가는 경 우도 적지 않았다. 이미 1910년대의 조선에 들어와 있었던 일본의 업자들 의 장사가 주둔군을 상대로 “재미질 만큼 벌이가 좋”(나카니시 이노스케, 103쪽)았던 것은 그런 공식적인 규율을 깨면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곳에 도“아버지가, 가라고 해서”(118쪽) 팔려온 일본의 소녀들이 있었고, 그렇게 “‘국력이발전하는 신영토’에 보내지는 젊은 여성들”(161쪽)이“C(조선을가 리킨다-인용자)에는 어떤 시골 구석에도”(317쪽)들어와 있는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