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금’을 반대한 이들은 ‘기금’의 주체를 ‘민간’으로만 생각해왔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기금’은 어디까지나 일본 정부가 국민과 함께 독자 적으로 책임을 지기 위해 만든 기구였다. 1965년의 한일기본조약이라는 제 약과 ‘강제연행’에 대한 의구심 때문에 국회에서는 합의를 보지 못해 그책 임 주체가 정부로 넘어갔을 뿐이다. 형식은 ‘민간’이었지만, 실제로는 정부 가 ‘국고금’을 반 이상 사용한 보상이었다. 국민모금이 모자랄 경우에는 정 부가 끝까지 관여하겠다고 약속했고, 실제로 사업이 종료된 시점에서 일본 정부가 국고금에서 지출한 금액은 전체 사업비용의 90퍼센트에 가까운 금 액이었다(와다 하루키, 2011, 53쪽)고 하니 실질적으로는 국가보상이었다. 그 런데 기금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보상사업에 대해 ‘쓰구나이償い’라는말 을쓰고 있다.이부분에 대해 다시 와다는 이렇게 말한다.
기금이 쓴 ‘쓰구나이償い’라는 말은 ‘보상補償’이라는 말과 구별되어 사용되었습 니다. 영어로는 補償은 compensation, 償い는 atonement라고 번역되었습니다. atonement라는 말은, 종교적인 단어로 속죄, 죄를 씻는다는 의미를 갖는 영어입 니다. the를 붙여 대문자로 the Atonement라고 쓰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의미합니다. 이에 따라 기금 사업은 사죄에 근거한 행위라는 것을 전하려 했던 겁니다. 영어로 설명을 들은 필리핀과 네덜란드가 아시아여성기금에 대해 다른 곳보다 더 이해해준 것은 이 부분과 관련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한국어로는 補償도 償い도 다르게 번역할 수 없어서 똑같이 ‘보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와다 하루키, 2012, 64~65쪽)
그런데 『아사히 신문』의 보도 이후에 난 항의광고에는 “우리는 민간기금에 의한 위로금이 아니라 일본 정부의 직접 사죄와 보상을 원합니다”라는 말이 보인다. 기금을 전적으로 ‘민간’기금으로, 보상금을 단순한 ‘위로금’ 으로만 이해한 것이다. 같은 광고에 게재된 전 ‘위안부’ 김학순 할머니도 기 금을 ‘미마이킨見舞金—위로금’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민간 인에게 무슨 죄가 있다는 말입니까”(김학순), “나는 거지가 아닙니다. 민간 인들한테서 모은 동정금은 필요없습니다”(이순덕)라고 말한다(「의견공고」,『마이니치 신문』, 1994. 11. 30.). “돈만 건네주면 된다고 생각하는가?”(송신도) 라는 항의 역시, ‘기금’이 정부의 ‘전후청산’ 작업의 일환이었다는 사실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같은 광고에서 재일교포 송신도 할머니는 “위로금見舞金을 받으면 주위 일본 사람들이 경멸한다”고 말한다. 그녀는 ‘주위의 경멸’을 두려 워했던 셈인데, 그녀가 말하는 ‘주위 일본 사람들’이란 누구였을까. 그들이 지원자들이라면, ‘위안부’들이 지원자들의 눈을 의식했다는 이야기가 된 다. 그들이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일반 일본인’들이라면, ‘일본’을 앞에 두 고 ‘조선인’으로서의 긍지를 의식한 발언일 터이다. 다시 말해 이 발언은 당 사자 자신만의 의견이 아니다.
이 광고는 “위로금이란 의무가 아니다. 법적 배상이란 의무를 지는 일이 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기금의 운영은 국고금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일본은 ‘법적 의무’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도의적 의무’를 다하려 고 했다.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수상이 편지에서 ‘도의적 책임’을 지겠 다고 말한 것은 그런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또 그들이 ‘법적 의무’가 없다 고 생각한 것은 실은 ‘사죄와 보상’을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1965년의 한일협정을 통해 ‘법적 책임’은 다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미 ‘사죄와 보상’을 다한 모범국으로 인식되는 독일의 ‘기억•책임•미래 재 단’의 보상도, 와다가 지적하는 것처럼(앞의 글), ‘도의적 책임’을 지는 보상금이었다.
와다에 의하면, 필리핀과 네덜란드에는 피해자를 찾기 위한 공고를낼때 atonement라는 영어가 사용되었는데, 그 단어의 의미가 오해 없이 받아들 여진 듯하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보상’이라는 말조차 기피되었고, 일본의 비판자들과 똑같은 오해와 공격이 나오게된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 위로금 日민간기금 “지급 강행”(『동아일보』, 1997. 1. 13.)
이런 제목을 단 기사는 ‘국가로서 도의적 책임을 통감’한다고 쓴 수상의 편지를 인용하면서 이렇게 적는다.
서울을 방문한 한 기금 측 관계자는 12일 오전 “보상금(위로금) 등 500만 엔을 받기로 한 한국인 피해자 7명은 지난해 12월 16일과 24일 보상금 등을 받겠다는 편지를 기금 측에 보내왔다”며 “이들처럼 보상금 등을 받겠다는 피해자가 있는 한우리의 사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이낙연기자)
이 기자는, ‘보상금’이라는 단어에 굳이 ‘위로금’이라고 다시 적는다. 기 금의 성립 과정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자신의 해석을 추가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기금’을 둘러싼 공격과 대립은 하나의 단어를 둘러싼 ‘해석’의 싸움이기도 했다. 그런데 앞서의 『마이니치 신문』광고에 실린 네덜란드의 ‘도의적 보상 청구 재단’은 일본 정부에 대한 요구사항을 ‘모든 피해자에게 개인보상을 함으로써 고통과 손해를 보상하는 일全被害者に個人補償することによって苦しみと損害を償うこと’이라고 쓰고 있다. ‘쓰구나우償う’란 그런 단어 다. 말하자면 한자에서도 알 수 있듯, ‘보상補償’의 뜻이자 ‘속죄’의 의미를 갖는다. 아니, 사실 ‘쓰구나우’는 와다 교수가 설명한 것처럼 ‘보상’보다 ‘속죄’의 의미가 더 강하다.
그러나 기금을 완전한 ‘민간기금’으로 이해한 이들은 일본 정부가 전달한 ‘쓰구나이킨償い金’을 단순한 ‘위로금’으로 격하했다. 한국 사회에서 ‘보 상은 없었다’는 이해가 주류가 된 것은 그런 경과를 거친 결과였다. 그러나 ‘도의적 책임’을 지는 뜻으로 건넨 그 돈이 일본 정부와 국민들의 ‘속죄’의 마음이 담긴 보상금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일본은 기금의 사업이 끝난 지금도 일부 ‘위안부’들에게 사후지원을 하고 있다(특정비영리활동법인 C²SEA 朋: Create Common Space in East Asia, Tomo, <사진 8> 참조). 이 단체의 팸플릿에는 “혼자 쓸쓸히 세상을 떠나는 것 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위안부’가 되었던 분들에게 보살핌을. 가르는 바다〓이어지는 바다, 동아시아와 일본—지금, 과거를 돌아보 며 만드는 미래”와 같은 문구가 보인다. 그러나 그런 사실 역시 한국에는 알 려지지 않는다.
필리핀의 경우는 지원단체가 처음에는 반대하다가 당사자들의 의견을 존중해서 국민기금을 지급받았다. 네덜란드의 경우는 연합국의 일원이었 기때문에 전후처리에 따른 조약에 의거해 추가보상을 받지 않고 수상의편 지를 전달하는 것으로 처리되었다. 그리고 그 편지를 받은 이들의 감상은 이들이 기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한국과 대만이 가장 치열한 갈등을 겪었던 것인데, 그건 뒤에서 보듯이 이들 나라/ 지역이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관계성이 만든 갈등이었다.
사진 8 ‘시투시 토모’의 팸플릿. “아시아여성기금 해산 후 그 사업을 ‘팔로 업’하는 위탁사업으로서 한국의 전 前 위안부를 케어, 지원하고 있다. 한국 각지의 ‘위안부’ 피해 당사자들을 순회방문하여 의 료 및 복지의 직접적인 지원과 함께 장보기, 식사, 청소, 빨래 등을 돕고, 생활상담 등을 포함하여 심신의 케어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