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최근 들어 일본의 지원자단체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관련 단체들이 연대한 조직 “일본군 ‘위안 부’ 문제 해결 전국행동 2010”이 2012년 2월에 발행한 팸플릿 『전국행동 2010 활동의 보고』에 그 조짐이 나타난다. 이 팸플릿에는 위안부 문제 해결 을 위해 ‘일본 정부에 대해 정치적 결단을 촉구하는 요청문을 보냅시다’라 는 말과 함께 ‘해결 내용’을 언급할 때 다음과 같은 내용에 중점을 두자고 말한다.
(1)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의 심정에가닿는 사죄를할것 (2) 국고에서 (지출하는)속죄금償い金을피해자에게 보낼것 (3) ‘인도적인 입장’이란 가해자 측인 일본 국가가 사용할 말이 아닙니다. 책임을 회피하는 말로 받아들여져 피해자에게 상처가 됩니다.
여기에는 ‘입법 해결’이라는 기존의 주장이 보이지 않는다. ‘정부에 대해 정치적 결단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또 보상금에 관해서도 정대협이 주 장하는 ‘배상금’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속죄금’,즉국민기금에서 사용했던 말을 그대로 쓰고 있다. 또 ‘인도적인 입장’이라는 말을 부정하지 않고, (한국에서 그 말을 썼더라도) ‘가해자 측인 일본’이 써서는 안 된다고만 말한다.
그리고 기존의 주장처럼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규탄하지 않고, 그말 이 어떤 맥락으로 받아들여지는지를 설명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동안 주장해왔던 국회가 주축이 되는 ‘입법 해결’ 대신 ‘정부의 국고금’을 해결 방식으로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이 점은, 이후 필자가 일본 지원단체의 대표에 게직접 확인하기도 했다).
그런데 일본 지원자들의 이런 변화를 모든 지원자가 공유하는 것 같지는 않다. 말하자면 90년대에 기금을 둘러싸고 양분되었던 일본의 진보세력이 다시 양분된 셈이다.
‘일본 제국’에 대한 더욱 철저한 반성과 사죄를 요구하는 이들의 진정은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정치적 입장이 앞서간 판단은 90년대의 일본의 사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진보좌파와 일치하지 않는 부분을 무조건 우익으로 몰고 적대시하면서 전쟁과 식민지배가 만든 모든 문제를 천황제에 의한 것 으로만 간주하고 그 책임을 천황에게 돌렸다. 그리고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입법이 추진되지 않는 것은 오로지 현대 일본이 전쟁과 식민주 의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들은 ‘전 후 일본’이란 그런 ‘한계’로만 가득한 나라이고 문제적인 시대였고, 그런 문 제적인 ‘전후일본’이‘현대일본’에도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라는 ‘일본’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본’이라는 주 체의 ‘합의’가 필요했다. 말하자면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간에 이견이 있다 해도 ‘합의’를 도출하는 일이 필수적이었다. 90년대의 기금은 1990년 대초에 일본의 연립정권이 ‘국회’에서의 ‘합의’를 포기하고 우선 실현할수 있었던 ‘합의’의형태였다.
그건 ‘타협’이나 정의의 ‘포기’가 아니라 ‘현실 문제의 해결’이라는 명제 앞에서 당연한 수순이었다. 물론 ‘국회’라는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에서의 ‘합의’를 요구하는 것은 이상적인 목표이기는 하다. 하지만 국회의 의결을 방해한 것은 보수 국회의원들에게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의식이 없어서라 기보다는 ‘강제연행’이라는 부분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강제연행은 ‘범죄’ 가될수 있었지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국가범죄’로서의 동원은 아니었 다. 그리고 식민지배에 의한 동원이었던 이상 ‘구조적 강제성’을 인정한 당 시의 조치는 의식한 것은 아니지만 합리적인 조치였다고 해야 한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이 20년 동안의 강경한 주장과 한국에 대한 지원이 결과적으로 위안부 문제 해결에 나섰던 관료들과 ‘선량’한 일본인들까지 자포자기적 무관심과 혐한으로 몰았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일본지 원자들도더늦기 전에 그동안의 운동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할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