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일본이나 한국의 지원자들의 인식—조금 편향된 인식이 이 문제에 관한 일본의 ‘부정’을 만나 더욱 거세진 건 사실이다. 그런 이들 중에는 위 안부란 피해자이기는커녕 오히려 ‘가난한 병사들의 돈을 가로채서, 큰돈을 벌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위안부’를 둘러싼 양상이 출신지역•시간•장소에 따라 ‘위안부’의 숫자 만큼이나 다양한 것은 사실이니 그런 경우에 해당하는 이가 없었던건아니 다. 문제는 부인하는 이들 역시(그래서 그들은 한국이 갖는 위안부상을 그저 거 짓이라고만 말하는데), ‘위안부란 매춘부’라는 하나의 상만 고집해왔다는 점 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그동안 위안부 문제를 두고 대립해온 이들은 각기 보고 싶은 내용에만 주목하면서 그것만을 위안부의 ‘진실’로 생각해온 셈이다.
위안부와 ‘일본군’의 관계는 우선 출신지가 ‘본국’인지 ‘식민지’인지 ‘적 국’인지 ‘점령지’인지에 따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자발성’ 속에 보이지 않는 구조적인 ‘강제’가 존재했고, ‘매춘부’라는 외견 속에 ‘성노예’라는 측 면이 존재했다.
물론 역으로 강제성 속에 자발성이 있었고 성노예의 이면에 매춘부가 있 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 정도의 차이는 국적에 따라 개개인이 처한 상황 에 따라 달랐다. 문제로서의 ‘위안부 문제’ 해결은 그 모든 상황의 차이를 보면서 결론을 내려야 한다.
분명한 것은 보수가 주어졌건 아니건 ‘위안부’란 남성에 의한 여성의 윤간이 국가에 의해 허용된 존재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을 허용한 의식은 여성을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는 도구로 대할 수 있게 만드는 차별의식이었 다. 특히 ‘조선인위안부’는 그런 인식이 명확히 드러난 경우다.
작가 다무라 다이지로의 소설들은 일본군의 그런 의식을 잘 보여준다. 다무라는 1940년에 징집되어 중국 북부지방에서 병사로서 전쟁을 경험했는 데, 중일전쟁기의 전쟁터를 무대로 한 「메뚜기蝗」(1964)는 그때의 경험을 녹여낸 소설 가운데 하나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하라다 중사는 부하들과 함께 전사자들의 유골을 넣 을 나무상자를 주둔지의 상인으로부터 넘겨받아 전선에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 중이다. 그런데 ‘다섯 명의 여자들을 주둔지에서 그곳까지 데리고 가 는 것도 그의 또 다른 임무’였다. ‘위안부’들 이외에 ‘조선인 업자’도 있었는 데, ‘중사’가 업자와 함께 위안부의 이송을 담당한 것이다. ‘위안부’와 업자 의이동이 이들의 ‘임무’였다는 것은 군이 적극적으로 ‘위안부’를 필요로했 고 그 관리에 나섰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런데 열차로 이동 중이었던 그들은 도중에 다른 부대와 만나게 되고,그부대장은 여자들을 내려놓으라고 요구한다.
“이봐, 나오라고 하잖아,안나올 거야! 조센삐.” (중략) “당신이 인솔자인가? 조센삐들을 당장 하차시켜라. 나는 이곳 고사포부대장 이다. 내려라.” (중략) “이들은 이시이石井 부대 전용 여자들입니다.” “뭐라고? 쓸데없는 소리 마라. 어차피 닳는 것도 아닌데 쩨쩨하게 왜 그러나. 신징(新京: 창춘長春의 만주국 시절 이름-인용자)에서는 신나게 인심썼다던데, 왜 우리 부대는안된다는 거야.” “하지만….” “하지만이고 뭐고, 안 된다면 통과시켜줄 수 없지. 이 앞으론 절대 못 간다. 알 겠나? 통행세라고. 기분 좋게 내고 가지 그래.” 이곳에 도착하기 전, 카이펑開封을 출발하고 얼마 안 지난 시점에 신징과 다른 한 곳에서 그녀들은 이미 두 번이나 차에서 끌어내려졌었다. 그때마다 그 지 점에 주둔 중이었던 병사들이 쉴새 없이 차례로 그녀들 다섯 사람에게 덤벼들었 다.(479~81쪽)
이 상황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강간’이다. 또 이들이 ‘이시이 부대 전용 여자들’이라는 말은 ‘위안부’들이 ‘부대’마다 할당되어 있었고 병사들이 ‘전용’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게 ‘위안부’는 일본군에 게군복이나 무기 같은 군수품이었다.
조선인 ‘위안부’를 지칭하는 ‘조센삐’라는 말에서는 조선인에 대한 노골 적인 경시가 드러난다. 이 군인들이 그녀들을 이렇게도 간단히 강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들이 ‘창녀’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조선인’이었기 때문이다. ‘닳는 것도 아닌데’라든지 ‘쩨쩨하게왜그러나’라는 표현은 이 군인들에게 조선인 ‘위안부’란 정당한 보수를 지급하고 이용하는 한 사 람의 ‘창녀’조차 아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조선인 위안부’란 전용권을가 진 부대가 다른 부대 소속 군인들에게 ‘신나게 인심써’도 되는 ‘물건’에 지 나지 않았다. 다시 말해 매춘부에게는 허용되기도 했던 자신의 신체의 관리 권을 그녀들은 갖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들은 그저 ‘통행세’로 간주 되는 사용가치일뿐주체적인 의지를 가진 상품조차 아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 강간당하고 돌아온 그녀들은 이렇게 말한다.
“제기랄. 누굴 병신으로 아나. 그자식들, 했으면 돈을 내야할거아냐. 돈도안내 고뭐하는 짓이야.” (중략)
“멍청하긴. 작전 중에 돈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냐”라며 병사들은 당연한 요구를 비웃었다.(488~89쪽)
‘위안부’들은 이렇게 ‘무상’노동도 강요당했다. 특히 처음 위안소에 도착 했을 때 그녀들이 장교들에게 통과의례처럼 당하는 강간은 거의가 무상이 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보수를 받았으면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설령 보수를 받았더라 도그 보수는 그녀들의 정신적•신체적 고통에 대한 대가로 충분한 것은 아 니었다. ‘위안부’들이 ‘비싼 요금’을 받았다고 강조하는 이들도 있지만, ‘위 안’이었건 ‘매춘’이었건 보수가 혹 높은 경우가 있었다면 그건 그만큼 그 일이 모두가 꺼리는 차별적이면서 가혹한 노동이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비싼 요금’은 오히려 당연하다. 그 장소가 목숨을 저당잡혀 있던 전선이었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대부분의 위안부들은 자신들의 몸값을 저당 잡혀있는 신세였다. 또 그 착취의 주체가 설령 포주들이었다 하더라도, 그런 착 취구조를 묵인하고 허용한(간혹그구조를 바로잡으려한군인도 있었지만 그건 예외적인 일로 보아야 한다)군의 상부에 책임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런데 이후 하라다 중사와 함께 ‘위안부’들을 호송 중이던 병사들까지 도그녀들에 대한 욕망을 드러낸다.
“응? 반장. 우리도 더못 참겠다고. 그까짓 거, 조센삐잖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저 여자들을 우리 부대가 있는 곳까지 운송해야 한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마지 막에 사람 수만 맞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아까 그 장교도 말했잖습니까. 진짜 닳 는 것도 아닌데, 도중에 우리가 좀 쓴다고 해서 뭐 잘못될 거 있나요? 다른 부대 는쓰게 해주고 우리만못쓰게 하는건이치에안맞잖습니까.”(492쪽)
병사들은 주저하는 하라다에게, 내일 닥칠지도 모를 자신들의 죽음을 상 기시키면서 ‘다른 부대들도 더 내버려두지 않게 될 것’이라면서 또 다시 조른다.
“그리고 저 여자들을 무사히 부대에 데려다주고 나면 그때부터 우리는 몇백 명 이나 되는 줄을 서야 되잖아요. 저 여자들하고 한번 하려면 몇 시간이고 서서 기 다려야 하잖습니까. 그건 말도 안되는 일 아닙니까?”(493쪽)
결국 하라다는 마지못해 허가하게 되고, ‘위안부’들은 하라다의 부하들에게 또 다시 강간을 당하게 된다. 그러고는 돌아온 ‘위안부’ 중 한 명인 ‘히 로코’는말한다.
“이 사람들 짐승 같아. 남이 피곤하다는데도 자꾸… 처음 봤다니까….”(495쪽)
실은 이 히로코와 하라다는 서로 호감을 가진 사이다. 그런데도 하라다는 “일본어가 가능하면서 병사들을 상대할 수 있는 건 너희들뿐이야. 병사들 을 동정해줘”라며 히로코를 달랜다. ‘위안부’들에 대해 동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하라다 역시 조선인 ‘위안부’의 고통보다는 일본인 군인의 욕망을 해소시키는 일을 우선시한 셈이다.
병사들의 강간은 위안소라는 공공장소에서 ‘몇백 명이나 되는 줄을 서’ 는 일에 대한 염증이 만들고 있다. 말하자면 강간을 피하기 위해 위안소를 만들었다는 군 상부의 의도는 군대의 숫자를 생각하면 처음부터 문제 해결 에는 도움이 될 수 없는 시도였다. 그리고 실제로 여기서의 강간 욕망은 그 녀들이 ‘고작 조센삐’였기 때문에 생긴 욕망이었다. 말하자면 단순한 여성 경시뿐만 아니라 민족 경시가 그들에게 강간을 허용한 것이다. ‘저 여자들 하고 한번 하’는 데에 ‘몇 시간이고 서서 기다려야’ 하는 것을 ‘말도안 되는 일’로 생각한 것은 상대에게 그럴 만큼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다. ‘조선인 위안부’란 그렇게, 여성을 도구화하는 성차별뿐 아니라 조선인 임을 경시하는 민족차별이 만든 존재이기도 했다.그점이 일본인 위안부와 다른 점이다.
무엇보다, 일본인 위안부가 주로 장교를 상대하고 조선인 위안부가 병사 를상대했다면, 처음부터 이들이 담당해야할숫자가 달랐으리라는 것도명 확해진다. 이동 중에도 강간을 당해야 했던 ‘조선인 위안부’들의, 몇백 명이 나상대해야 하는 노동이란 상상을 초월하는 극한 노동이다. 정상적으로감 내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런 상황이 용인되었다는 것도, 일본군에게는 ‘묵인과 유지’의 책임이 따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강간을 막기 위해 위안소를 만들었지만 몇백만의 군인을 감내할 위안부가 충분하지 않았다면, 그러면서도 전쟁에 위안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 처음부터 ‘군수품’ 보급이 어려운 전쟁으로 판단하고 전쟁을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이 다. 일반적인 전쟁이 군인의 숫자와 무기보급과 연료와 식량 등을 계산하며 승산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이 부분에서 일본군은 계산을 완전히 잘못한 셈이다.
물론 앞에서 본 것처럼 일본군 중에는 그녀들을 ‘인간’으로서 인식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위안부’에게 친절하게 대했고 사랑하고 청혼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도, 설령 그녀들이 ‘조선인 부모에 의해 팔려’가거나, ‘조선인 업자’에 의해 ‘강제로 끌’려갔다 하더라도, 그녀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 성을 훼손하게 되는 구조를 기획하고 마지막 순서로 가담한 이들은 일본군 이었다. 전쟁터의 ‘위안부’들이 ‘원래부터 매춘부’였는지 아닌지는 그런 점 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물론 이 소설 속의 장면은 위안소의 규율 바깥에서 벌어진 일이니 예외 적이고 ‘개인적’인 상황일뿐‘조선인 위안부’에게 원래 요구된 역할은 아니 다. 그러나 여기에서 벌어진 ‘개인적’인 일 역시, 군인들의 대화에서 보이는 것처럼 ‘공적’인 사회인식과 구조가 만든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인식과 구 조를 만든 일본의 책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소설 속의 장면은 ‘공적’으로 용인된 구도, 즉 종주국-식민지 라는 권력구조가 만든 일이다. 이들의 행위는 단순강간으로 처벌받아야 할 영역조차 넘어선 교묘한 구조 속의 일이지만, 문제는 조선인 ‘위안부’들이 그렇게 군대에 의해서든 민간에 의해서든 ‘공적’인 운영 공간의 바깥에서 도강간—착취당하기 쉬운 존재였다는 점에 있다.
‘점령지의 여성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생각은 ‘피해를 끼’쳐도 상관없는 여성이 있다는 사고를 전제로 한다.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한 위안 소를 타국 군인에 의한 점령지에서의 강간과 비교하면서 일본은 ‘러시아 같은 야만국과는 다르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지만, ‘야만’과 대조되는 위안 소, 잘 관리되면서 지극히 ‘문명’적으로 보이는 그곳은 가난이나 그 밖의 이 유로 차별해도 되는 것으로 간주된 여성에 대한 폭력을 ‘공식적으로’ 용인 한 장소일 뿐이다. 공창을 합법화하는 발상 자체가 인간에 의한 인간(여성) 의상품화라는 ‘야만’을정당화하는 장치인 것이다.
소설에서 ‘위안부’들은 강간당하기 전 “밤이 늦었다고 말했는데도 차량 안에서 미친 듯 소리치며 노래를 불렀다”, “같은 노래를 몇 번이고 불렀다”. 뿐만 아니라 그녀들은 강간당한뒤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치부를 그대로드 러낸 채로 누워 있기도 한다. 작가는 그런 장면을 이렇게 쓴다.
평소에 그녀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곳을 남자들에게 보란 듯이 내보이는 건남 자들에 대한 도전, 그리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들 자신이 수치를 느끼는 데 에 대한 저항, 그리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자신들의 삶의 방 식을 애써 잊어버리려는 적극적인 몸부림인 셈이다.(490쪽)
그녀들이 ‘미친 듯이’ 부르는 ‘노래’는그런 비참과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노래하는 위안부’ 를 ‘비참한 위안부’와는 다른 존재로 생각하려 하는 것은 보고 싶은 모습만 보려 하는 욕망이 만드는 생각일 뿐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사랑을 나누고 행복이 존재했다 하더라도, 그들에게그위안부 생활은 폭행과 병과 죽음이 이웃하는 장소였다.
그녀들을 데리고 다닌 포주 중에는 조선인도 많았지만, 그들이 ‘위안부’들의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군인들이 하는 대로 내버 려둔 채 아무런 개입도 못 하고 있는 이 소설 속의 상황도, 위안부들의 직접 관리자는 포주였어도 ‘위안부’들을 실제로 ‘관리’할수있는 권력을 가진주 체는 다름 아닌 ‘일본군’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메뚜기」는 위안부의 비참한 상황뿐 아니라 위안부가 그럴 수록 자신이 호의를 가진 군인에게 집착하는 장면 또한 보여준다. 그런 위 안부의 욕망이란 자신이 소비되는 ‘물건’으로서의 ‘위안부’라는 사실을 잊 게 해주는 유일한 수단이었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위안부의 욕망 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성노예’라는 측면에만 집착하는 것은 가까스로 자신의 몸과 마음의 주인이고자 했던 위안부의 노력을 짓밟 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의 몸을 마음대로 다루었던 일본군과 다를바없는또하나의 폭력일 수밖에 없다.
전쟁터에서의 ‘집단위안’이란 주체도 객체도 자신이 ‘인간’임을 잊어야 하는 일이었다. 군인은 자신의 성적 욕망을(때로는 행위 자체를) 공중 앞에 드러내놓는 데에 대한 수치를 잊고, 눈앞에 있는 인간을 물건(상품)으로 대 하는 일로 ‘인간적’이기를 포기해야 했다. 위안부는 자신의 몸의 주인이기 를 포기하고 감정을 가진 ‘인간’이기를 포기해야 했다. ‘아시아의 해방’을 명분으로 하면서도, ‘위안부’와 병사의 비참한 상황이 보여주는 것처럼 실 상은 개인의 자유와 해방을 억압하면서 이루어진 전쟁이었다는 것이, 일본 의전쟁의 결정적인 모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