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산적인 논의’를 위해서

“위안부 문제는 왜 10년이 넘도록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일까.” 나는 8년 전에 이렇게 시작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화해를 위해서—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 (뿌리와이파리, 2005)라는 책에서의 일이다. 나는 또 “일본이 주변국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고 있다면, 혹은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면, 거기에는 이제까지의 비판의 형식과 내용에 문제가 있었던 데에도 원인이 없지 않다”라고도 썼다. 그리고 한일 간의 문제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복잡”한 문제이고 그런 “복잡함”을 보기 위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문제들을 조금 깊이 볼 수 있다면 분노와 비난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어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해진다면 “그때 비로소 화해를 위한 논의는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도.

그런데 그로부터 8년이 지나도록, 그때 바랐던 “생산적인 논의”는 정작 필요한 곳에서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한 당연한 일이었지만, 한일관계를 둘러싼 상황은 그동안 기본적으로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러니 “우리 안의 견고한 기억들”에 “화해를 지향하는 균열”을 내보려 했던 8년 전의 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 셈이다.

그 책이나 또 다른 한일관계 관련 책들(『반일민족주의를 넘어서』, 공편저『한일 역사인식의 메타히스토리』 등)에서 내가 중점을 두었던 것은 민족주의 비판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민족주의’ 비판만으로는 한일 간의 갈등을 풀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그 책의 시도가 실패한 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한일 간의 갈등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이 책은, 세월이 흘러 이제는 ‘왜 20년이 넘도록 해결되지 않는지’를 물어야 하게 된, 그런 ‘복잡한 구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본 책이다. 무엇보다도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상황은 당시보다 훨씬 나빠졌다. 그리고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위안부’가 누구인지에 대한 이해가 불충분했기 때문이다. ‘위안부’는 실은 결코 하나로 설명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도 그동안 우리는 ‘위안부’에 관해 하나의 이미지만을 떠올려왔다.

‘해결’해야 하는 하나의 문제가 있을 때 그에 대해 가능한 한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래야만 상황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 아닌가. 하지만 그 정보에는 때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까지 섞여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 20년은 그중에서 듣고 싶은 이야기만 취사선택해서 들어왔고 그에 바탕해 위안부에 관한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온 세월이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 안의 ‘위안부’는 그저 가녀린 ‘소녀’가 아니면 노구를 이끌고 투쟁하는 ‘투사’일 뿐이다. 그러나 그건 실은 그녀들 자신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원한 위안부’의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는 이 책은 그런 식으로 우리가 폭력적으로 소거시켜온 그녀들의 기억들을 다시 만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시도는, 나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마음 편한 일이 아닐 뿐 아니라 아프기까지 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불편함과 아픔을 공유하려는 이유는, 오직 단 하나, 그런 불편함과 아픔을 거치지 않고서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우리도 완전한 군인이지”(『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3』, 246쪽)라고 말하는 위안부의 목소리를 듣고, 그 말이 상징하는 ‘식민지의 모순’을 직시해야 하는, 아프기까지 한 불편함.

불편한 일을 굳이 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가 그 모습을 외면하는 사이에, ‘식민지배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일본인들이 그 모습들을 왜곡해서 보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에 나선 이들의 대부분은 극도의 ‘혐한’감정을 갖고 있는데, 그들의 혐한감정은 특히 이 10여 년 동안 서서히 커져왔다. 그리고 그들의 혐한은 1990년대 초 이후의 역사 문제 갈등에서 한국인이 그들을 용서하지 않고 언제까지고 비난만 한다는 생각에서 오는 부분이 크다. 그리고 문제는 그들의 말에 동의하지 않아도 그런 그들의 ‘감정’을 공유하는 이들이 일본 사회에 급격히 늘어나는 중이라는 점이다. 이제는 혐한파뿐 아니라 한국을 잘 알고 좋아했던 이들조차 이렇게 말한다. “더 이상 한국과 소통하기가 힘들다고 느낀다.”(지한파 교수) “그동안 일본에게 한국은 특별한 존재였다. 그런데 한국은 일본의 그런 마음을 알아주지 않으니, 알고 보니 짝사랑을 한 셈이다. 이제 그만 그런 감정을 버리고 한국을 보통 나라로 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외교관) “나는 한국을 좋아하는데, 한국인들은 거짓말까지 하면서 일본을 욕하고 언제까지고 일본을 용서하지 않으려 한다. 이젠 한국이 싫어지려고 하는데, 어쩌면 좋은가?”(대학생)

말하자면 한일 양국은 20여 년의 역사 문제 갈등을 거치면서 심각한 소통부재 상황에 빠져버렸다. 외교채널조차 가동되지 못한 지 일 년이 넘었고, 현재 두 나라 국민은 상대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갈등의 중심에 위안부 문제가 있고, 그들은 한국이 세계를 향해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일본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원점으로 돌아가 위안부 문제를 생각해보기로 했다. 이미 8년 전의 책에서 나는,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관해 나름대로 ‘사죄와 보상’을 했다는 사실, 그리고 일부 위안부들이 그 ‘사죄와 보상’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대해 쓴 적이 있다. 하지만 지원단체는 그 ‘사죄와 보상’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지금 우리가 일본의 사죄와 보상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그 때문이기도 하다. 그 판단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 위안부 문제가 이렇게까지 심각한 국가 문제가 된 이상 이 문제에 대한 판단을 지원단체나 소수의 연구자들에게만 맡겨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이제까지의 20년 동안에는 오로지 소수의 관계자들의 생각이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국의 태도를 결정지었고, 결과적으로 이들의 의견이 한일관계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물론 ‘소수’라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보게 되겠지만, 그들의 판단이 전부 옳거나 진실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동안에는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 지원단체의 의견에 어느 누구도 이의제기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단언컨대 현재의 방식으로는 위안부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마도 한국의 교과서는 ‘결국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관해 아무런 사죄도 보상도 하지 않았다’고 쓸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일 수가 없다. 그런 이상, 나는 다시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그저 좋은 한일관계를 지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동안 양국의 이해를 위해, 나아가 동아시아의 상호 신뢰회복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해온 이들이 쌓아올린 신뢰의 탑이 적대와 대립의 언어만이 난무하는 가운데 무너지는 것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갈등을 조장하는 담론들이 마음 여린 이들을 상처 입히고, 마음을 닫도록 만드는 것을 팔짱만 끼고 보고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쓰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 문제가 단지 ‘해결’을 기다리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위안부 문제는 일본과 한국에 존재하는 ‘미군기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를 ‘일본’만의 특수한 일로 생각하는 사고는 그런 구조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 ‘평화’를 지향하는 현재의 운동이 평화를 만들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런 생각들을 정리해본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세계의 상식’에 이의제기를 하는 셈이 된 이 책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조금은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당장은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든, 언젠가는 이 책이 식민지 시대가 만든 우리 안의 분열들, 동아시아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한 작은 디딤돌이 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역사가 만드는 대립과 분열로 인해 상처 입었던 이들에게, 그럼에도 여전히, 상처를 딛고 평화와 신뢰를 만들려 하는 이들에게, 누구보다도 먼저 보내고 싶다.

(이 책의 일부는 2012년 12월부터 다섯 달 동안 일본의 인터넷매체에 연재했던 글들이다. 반복을 피하기 위해 조금 다듬기는 했지만, 내용 자체는 거의 바꾸지 않았다. 『WEBRONZA』, 2011. 12.~2012.5.)

2013년 7월 17일, 예순여덟 번째 8•15를앞두고

박유하